광한루 | |||||
작성자 | 김** | 작성일 | 2014-02-03 | 조회수 | 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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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廣寒樓)
지정번호 : 보물 제 281호
소 재 지 : 전북 남원시 천거동
시 대 : 조선 세종
광한루는 남원을 상징하는 유서 깊은 명소로 양녕대군의 폐출불가를 주장하다 태종의 노여움을 사 남원으로 유배되었던 황희 정승이 세종 원년(1418년)에 지은 광통루에서 유래한다. 그 후 세종 16년(1434년)에 남원부사 민여공이 규모를 넓혔으며 세종 26년, 전라도 관찰사였던 정인지가 그 수려한 경치에 감탄해 전설상의 달나라 궁궐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와 닮았다고 하여 광한루라 고쳐 불렀고, 정유재란 때 없어진 것을 1638년(인조 16)에 재건하였다고 한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양식으로 연못에 면하여 남향으로 세웠으며, 툇마루 주위에 난간을 돌리고 기둥 사이에는 모두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달아 여름에는 개방하도록 하였다. 마루 밑의 기둥은 전면과 사우(四隅)가 4각형 돌기둥이며 나머지 3면은 원형 돌기둥의 동발기둥, 그 안쪽은 모두 나무기둥이다.
공포(貢包)는 2익공(二翼工)집에 가까운 형식으로 외목도리를 받쳤으며, 기둥 사이 미간(楣間)에는 화반(花盤)을 하나씩 배치하였으나 쇠서의 형태는 다포집에서 볼 수 있는 앙설형(仰舌形)이고, 후면 중앙 사이에는 조선 말기에 부설된 계단이 있다.
광한루 동쪽에는 가로?세로가 2칸, 1칸인 부속건물이 있는데, 주위에는 툇마루를 돌리고 난간을 세웠으며 내부는 온돌방이다. 공포는 기둥 위에 얹은 주두(柱頭)로 도리를 받고 창방(昌枋)은 생략하여 기둥머리 좌우에서 첨차(墅遮)가 나와 도리 밑의 장설(長舌)을 받치게 한 간단한 구조로 정조 때 증축하였다.
광한루는 소설 춘향전의 무대로 이도령과 춘향이 만나 인연을 맺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하나의 누각일 뿐이지만 이것을 중심으로 펼쳐진 2만여㎡의 광한루원을 통틀어 흔히 광한루라고 한다. 광한루원(사적 303호)안에는 연못 속의 세 개의 섬(삼신산), 춘향의 영정이 걸린 춘향사, 춘향과 이도령이 백년가약을 맺은 부용당, 견우와 직녀의 전설에서 이름을 딴 오작교, 아름다운 연못가에 있는 화강암석인 자라 모양의 자랏돌, 춘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네, 춘향의 어머니가 살았다는 월매집 등을 비롯하여 많은 시설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매년 음력 4월8일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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