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역사·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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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金山寺)
작성자 임** 작성일 2017-07-13 조회수 487

개요

전라북도 김제시 무악산(毋岳山)에 있는 절이다. 600(법왕 2)에 창건되었고, 762(경덕왕 21) 신라의 진표(眞表)가 중창을 시작하여 766(혜공왕 2)에 완공하였다. 이때 진표는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을 조성하여 주존불로 삼았고, 금당의 남쪽 벽에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서 자신에게 계법을 주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후삼국시대에는 왕위계승문제로 맏아들 신검(神劒)이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유폐했으나 탈출하였다. 그리고 고려 왕건에게 투항하여 상부(尙父) 칭호와 양주(楊州)를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936년 왕건에게 신검의 토벌을 요청하여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고려의 왕건이 신검 등을 우대하는 것을 보고 분을 못 이겨 앓다가 얼마 뒤 황산(黃山:충남 논산시 연산면) 불사(佛舍)에서 등창이 나서 죽었다.

이 절은 신라 시대부터 법상종(法相宗)의 근본 도량이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법상종 대종사(大宗師) 혜덕 소현(韶顯)1079(문종 33)에 주지로 있으면서 중창하였는데, 특히 절의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을 설립하여 간경(刊經), 법석(法席) 등을 주관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때 처영(處英)이 이곳을 중심으로 승병을 이끌고 의병으로 나서기도 하였지만, 이 때 소실되었다. 1601(선조 34) 수문(守文)이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1635(인조 13)에 낙성.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된 미륵전과 보물로 지정된 노주(露柱), 석련대(石蓮臺), 석종, 육각다층석탑, 오층석탑, 석등, 대장전, 당간지주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구조

유물·유적 중 일부 석조물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임진왜란 후의 조형들이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거대한 사역에 대사(大寺) · 봉천원(奉天院) · 광교원의 3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86채의 당우가 임진왜란의 참화로 없어진 뒤 40년 만에 대사지역의 건물만 재건되었고, 나머지 사지(寺址)는 절의 동북쪽 넓은 지역에 유지만 전해지고 있다. 근년에 월주(月珠)가 주지로 취임한 이래 모든 당우와 도량을 정비하여 수도처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약 500m 밖에 위치하는 일주문을 비롯하여, 금강문· 보제루(普濟樓) · 미륵전 · 대적광전· 대장전 · 명부전 · 승당(僧堂) · 서전(西殿) 등의 건물을 중수 또는 중건하였다.

문화재로 지정된 많은 유물 중에서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미륵전은 신라시대부터 미륵본존을 봉안했던 금당이다. 신라 때의 형태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거대한 불상의 좌대 아래에 있는 철수미좌(鐵須彌座) 등의 형태로 보아 임진왜란 전에는 거대한 미륵존상을 봉안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보물 제476호였던 대적광전은 금산사 내에서 단층 건물로는 가장 웅장한 건물 수계(受戒) · 설계(說戒) · 설법(說法) 등의 법요를 진행했던 곳이다. 이 법당은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뒤 1635(인조 13)에 중건하여 총 28칸의 큰 불전을 이루었으나, 198612월에 화재로 소실되어 1992년 복원하였다.

대장전은 본래 미륵전의 정면 우측에 위치하여, 미륵전을 장엄하게 하던 정중(庭中) 목탑이었다. 1922년 이 건물을 현 위치로 옮겨지었지만, 지붕에는 전대 목탑의 잔영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복발(覆鉢)과 보주(寶珠) 등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전 내에는 석가모니불과 가섭·아난(阿難)의 제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은 명부시왕(冥府十王)을 봉안한 당우로서 1857(철종 8)에 비구니 만택(滿澤)이 재건하였으며, 나한전은 방등계단(方等戒壇) 바로 옆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계단을 참배할 수 있으므로 일명 계단예배전(戒壇禮拜殿)이라고도 한다. 나한전의 내부 중앙에는 석가여래삼존불과 16나한상(十六羅漢像)을 봉안하였다. 방등계단 앞에는 1998년에 적멸보궁을 지었다. 일주문은 1975년에 고평용이 건립하였으며, 금강문은 절로 들어가는 두 번째 산문으로서 절을 수호하는 금강역사의 화상을 안치한 곳이다. 보제루는 절로 들어가는 세 번째 문루 구실을 하는 건물로서 법요(法要법회의식)와 강설당(講說堂)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현존하는 당우로는 성렬이 1939년에 신축한 종각과 1940년에 신축한 중향각(中香閣), 1943년에 신축한 칠성각, 연대 미상의 송대향각(送大香閣)이 있다. 또한 1999년에 금산사 내의 성보문화재를 보관 전시하는 성보박물관을 경내에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