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흥덕사지(淸州 興德寺址) | |||||
작성자 | 임** | 작성일 | 2017-07-13 | 조회수 | 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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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흥덕사지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했던 사찰이다. 이 사찰은 15세기경 폐사 되어 절터만이 남아있었으나 1984년 개발 도중 존재가 확인 되어서 발굴을 시작했다. 현재 흥덕사지는 복원된 금당 한 채가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부터 『직지』가 알려지면서 직지를 간행한 흥덕사가 청주 부근에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직지 하권의 맨 끝장에 있는 간기(刊記)에서 이 책은 청주 흥덕사에서 1337년(우왕 3년)에 금속활자로 인쇄하였음을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흥덕사에 대한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어떠한 문헌에서도 흥덕사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덕사는 매우 우연하게 발견되었다. 청주시에서 택지개발 공사 도중 많은 유물이 발견되어 조사하던 중 청동 금구에서 음각된 글자로 서원부흥덕사(西原府興德寺)라고 적혀 있었다. 이 금구에는 ‘갑인오월 일 서원부흥덕사 금구일좌개조 입삼탑이근인’(甲寅五月 日 西原府興德寺 禁口壹座改造 入參塔貳斤印)이라 적혀있다. 그 결과 발굴하는 사찰이 『직지』의 간행기록에 나오는 흥덕사 터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 구조 현재 흥덕사의 복원된 형태는 1탑 1금당 형식이나 흥덕사의 원형이 1탑 1금당형식으로 보기는 어렵다. 흥덕사는 개발 공사 도중 발견되어서 훼손된 부분이 발굴된 면적의 배나 되었는데 한국토지개발공사 지부에 공사 중단을 요청했으나 공사에서는 요청을 무시하고 진행하였다. 결국 동쪽 회랑에서 중심이 되는 금당지 유적이 있는 곳까지 훼손되어 현재는 원형이 남아있지 않다. 흥덕사에는 현재 동남쪽의 일부가 손상된 금당지 유적, 동변부가 유실된 강당지, 원형이 제대로 남아있는 서쪽 회랑지와 회랑지 벽면에 붙은 건물만이 남아있다. 흥덕사지의 출토 유물은 크게 와전류와 금속류로 분류된다. 와전류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수막새 · 암막새 · 치미 등이 있고 발굴에 의해 원위치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대중3년명(大中三年銘)의 기와가 발견되면서 849년(문성왕 11년)에 이미 흥덕사가 존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금속류는 금구 3점을 비롯하여 모두 청동제인 소종, 금강저, 보당용두, 불기, 발 등이 있는데, 이들 청동제 유물들은 모두 사지에서 150m~200m 떨어진 흙더미에서 수습되어 정확한 매장 상태를 알 수 없으나 이 유물들의 표면에 붉은 산화철 녹이 끼어 있고 주변에서 철제 가마솥 파편들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큰 가마솥에 사찰에서 사용하던 불기(佛器) 들을 넣어 인위적으로 매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흥덕사에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여 예불에 사용하던 중요한 기물들을 급히 매장하고 사람들만 사찰을 떠났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