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선원(高麗禪園) | |||||
작성자 | 임** | 작성일 | 2017-07-13 | 조회수 | 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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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고려 선종 6년 이자현이 불교의 선(禪)을 닦는 도량(道場)으로 문수원을 중건하면서 선원(禪園)을 확대한 곳이다. 이후 조선시대에 보우에 의해 선원이 한층 세부적으로 원림화되어 청평사에 특징적 원림문화가 형성되게 되었다. 청평사는 도교적 은둔관과 불교의 선사상이 내재된 선원으로 남한에 남아있는 드문 고려시대 유적이다. 또한 김시습 · 이황 · 정약용 등 많은 문인 · 유학자들이 다녀가면서 이자현의 유적과 청평 산수의 절경에 대한 감회를 글로 많이 남겼다. ■ 구조 청평사의 대표적 조경시설인 ‘영지’ 는 고려시대에 조성되어 조선 초 쌍지로 개축된 한국 전통연못의 원형적 가치를 지닌 조경유적이다. 이자현은 절 남쪽에 영지를 조성하고 절 뒤편에 8암자중 하나인 견성암을 세워 이 못에 투영되도록 했다. 영지는 착시현상에 의해 투영 폭을 동일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사다리꼴 형태로 만든 미적 측면과 기능적 측면 등이 세밀히 고려된 전통연못의 축조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지는 조선 중기 보우 때 개축하여 상하구조로 되었는데, 1986년 영지를 복원하면서 사다리꼴만 살리고 못 안의 설치된 둑을 제거해 보우 때 영지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처럼 청평사 선원은 지형지세를 잘 이용해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고려, 조선시대에 발달된 선원으로 자연관, 경관관이 표출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문화유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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