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역사·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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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지(淸平寺址)
작성자 임** 작성일 2017-07-13 조회수 230

개요

청평사는 973(광종 24) 영현선사(永賢禪師)가 창건한 백암선원(白岩禪院)에서 출발한다. 그 후로 1068(문종 22)이의(李?)가 중건하고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으며, 1089(선종 6)이의의 아들인 이자현(李資玄)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자 도적, 호랑이, 이리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에 산 이름을 청평(淸平)이라 하고 절 이름을 문수원(文殊院)이라 한 뒤, 8암자를 짓고 크게 중창하였다.

조선 중기 보우대사(普雨大師)는 이자현이 구축한 문수원을 기반으로 청평사로 개칭했다. 경내는 문수원 때의 대웅전만 제외하고는 확장했고 모두 새로 지어 현재의 구조를 갖추어 놓았다. 또한 경외 영지의 개축, 조경식물 이식과 선원의 경관의 질을 높였다. 선원에 조성된 인공물들은 점차 현대까지 오며 대부분 소멸, 일부는 실체도 모른 채 방치되어 우수한 역사 문화적 가치가 숨어있다.

청평사지란 이 청평사의 절터를 말하는 것이다. 현재는 강원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불전·회랑·문 등의 초석을 통하여 전성기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

 

구조

청평사의 현존 건물로는 대웅전, 극락보전, 삼성각, 청평루 등이 있으며 주요문화재로는 회전문, 고려정원 등이 있다. 이러한 청평사의 건물과 문화재는 청평사가 지어진지 오래 되어 파괴되거나 소실된 것들이 많았다. 현대에 오면서 1949년 극락전마저 소실되어 청평사는 거의 폐허에 이르러 회전문 이외에는 전부 소실되고 사지(절터)로 남게 되었다.

극락보전과 삼성각을 1977년에 복원하였고 1978년 해탈문과 청평보탑을 새로 지었다. 1984년에는 요사와 청평루, 선방을 지었고 1989년에는 대웅전을 복원하였다. 2000년에는 관음전과 나한전이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