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역사·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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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돈사지
작성자 임** 작성일 2017-07-13 조회수 117

개요

원래 거돈사는 신라 말기에 신라 왕실의 후원을 받았던 곳이었다. 고려 초기 불교계의 중심이었던 법안종(法眼宗)의 주요 사찰이었으나 고려 중기에 천태종(天台宗) 사찰로 흡수되었다. 중심인물인 원공국사(圓空國師)는 광종의 비호를 받으며 법안종 세력을 고려 불교계에 크게 떨친 인물이었으나 광종의 사망으로 인해 법안종 세력도 위축되었고 원공국사도 89세인 1018(현종 9)에 거돈사에서 임종을 맞이하였다.

그는 입적 후 우공국사로 추증되었고, 거돈사에 탑비와 함께 탑이 건립되었다. 지금 거돈 사지에는 고려 1025(현종 16)에 조성된 원공국사탑비만 남아 있다. 원공국사 탑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서울의 자기 집으로 옮겨간 것을 1948년 경복궁 경내로 옮긴 이후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현재 이곳의 아래 옛 정산분교 자리에는 완성되지 않은 거대한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구조

거돈 사지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절터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탑식(一塔式) 가람으로 주목되는 곳이다.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신라 후기인 9세기에 처음 지어져 고려 초기에 확장. 보수되어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고, 절터에서는 중문지, 금당지, 강당지, 승방지, 회랑지 등이 확인되었다. 중문지 북쪽에는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형식을 갖춘 삼층석탑(보물 제 750)이 있고, 이 석탑의 동쪽에는 원공국사탑비(보물 제 78)가 있다.

이 절터는 현재 남아 있는 삼층석탑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경사가 있는 곳에 석축을 높이 쌓아 조성한 평지에 중문지를 만들고, 일탑(一塔) 일금당식(一金堂式) 가람 배치를 중심으로 동남 축으로 가람을 전개하여 금당 후면 강당지에 이르기까지 회랑지가 둘러싸여 있다.

현재 남아있는 중문지를 지나면 삼층석탑이 있고, 바로 뒤에 정면 5, 측면 3칸의 금당지가 있다. 중심 건물인 금당지는 초석의 배열 간격으로 보아 중심에 있는 어칸의 길이가 협칸보다 길게 되어 있고, 평면 중앙부에 2m 정도 높이의 화강암으로 만든 부처님을 모신 불상 대좌(臺座)가 있다. 대좌에 초석이 있고 그 밑에 적심석이 있다. 그리고 사방에 지대석을 돌린 것으로 보아 불상을 먼저 조성한 후 금당이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금당지 뒤로 낮은 석축이 있고 건물을 지었던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강당지로 추정된다. 금당지를 중심으로 하는 남북측 오른편에 많은 건물이 있다. 절터 뒤편 나지마한 언덕에는 원래 원공국사탑이 있었으나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경내로 옮겨져 있다. 왼쪽 회랑지 끝에는 이 절터 발굴조사에서 나온 석재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