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역사·문화학과
본문바로가기
ender
커뮤니티
자료실

자료실

단양 신라적성비(丹陽 新羅赤城碑)
작성자 임** 작성일 2017-07-13 조회수 166

개요

본 비는 현재 원래의 발견지인 충청북도 단양군(丹陽郡) 단양면(丹陽面) 하방리(下坊里)의 적성(赤城)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보 198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장은 순수한 한문식이 아니라 신라식 이두문(吏讀文)과 한문이 섞여 있다. 서체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해서체(楷書體)이지만 예서풍(隸書風)이 강하게 남아 있다. 북조(北朝)의 비에서는 대체로 방필(方筆)을 사용하였고 남조(南朝)에서는 원필(圓筆)을 사용하였는데 본 비는 서체 상 남조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비의 글자는 자경이 2cm 내외로 상당히 얕게 새겨져 있으나, 오랫동안 땅 속에 파묻혀 있어 부식되지 않아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는 거의 없다. 기존의 문헌자료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 신라사의 이해를 심화시키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이 비는 적성을 공략하고 난 후 공을 세운 적성 출신의 야이차(也?次) 및 그와 일정한 관계에 있던 인물들을 포상(褒賞)하고 난 뒤 이를 증명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적성 지방민들을 위무(慰撫)할 목적에서 세운 비로 추정 된다. 가령 대중등(大衆等), 군주(軍主), 당주(幢主), 사인(使人) 등을 통하여 중앙정치나 지방통치조직에 대한 이해나 혹은 촌락의 존재양상에 대한 이해를 드높일 수 있다. 특히 국법(國法), 적성전사법(赤城佃舍法), 소자(小子), 소녀(小女), () 등을 통하여서는 율령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사 전반에 대한 이해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그밖에 경위나 외위 등 신라 관등제 연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으며 적성 공략을 기념으로 하여 세운 척경비(拓境碑)로써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조

비의 높이는 93cm, 상폭(上幅)107cm, 하폭(下幅)53cm로서 전체적인 형태는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이며, 비의 모양을 보아 꼽는 형식의 대석(臺石)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비각과 함께 보호막이 둘러쳐져 있으나 무절제한 탁본으로 말미암아 먹이 묻는 등 발견 당시에 비하여 비면이 많이 훼손된 편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물갈이하여 비면으로 이용하였다. 비의 상단부(上端部)는 파손되었으나 좌, 우 양 측면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본 비는 19781월에 발견되었으며, 단양군 일대에서 온달(溫達)과 관련된 유적지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며, 비석에 새겨진 글자는 전체 22행의 430자 내외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글자 수는 288자이지만 주변의 발굴을 통하여 수습된 비편 21()를 합하면 현재 알 수 있는 확실한 글자는 309자에 달하는 셈이다. 비문의 자체는 중국 남북조 초기의 것과 일치하며, 굴곡을 지닌 율동적인 글씨로 예서에서 해서로 옮겨가는 과정이 나타난 운필법(運筆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