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역사·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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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경운궁)
작성자 강** 작성일 2014-04-04 조회수 1282
* 덕수궁(경운궁) 덕수궁은 본시 정릉동 (현재 정동) 월산 대군의 구택으로 건립되었다. 월산대군은 조선 제9대 성종의 형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 대신 부한 재보와 귀한 궁전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당시에 신의주로 피신갔다 돌아온 선조의 임시 행궁으로 사용할 때 경운궁이라 명명되었다. 그후 광해군 3년 10월에 광해군이 대비를 경운궁에 옮겨 모셨고 인조가 즉위하여 명례궁이라 하였다가 광무 원년(1897)에 고종이 이 궁에 이어한 후 경운궁이라 다시 불렀다. 고종이 경복궁에 있던 고종 32년(1895) 10월에 일본 군대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경복궁 내에서 난동과 명성황후 시해의 참변이 있은 후 얼마 안있어 고종은 치밀한 사전준비로 이듬해 2월에 왕태자와 함께 한 많은 경복궁을 떠나 경운궁 근처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관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 황태자와 황태자비는 경운궁에 머물게 하였다. 정국이 어느정도 안정되자 고종은 광무 원년(1897) 2월에 러시아 공간으로부터 경운궁으로 옮겨옴으로써 경운궁은 오래간만에 다시 왕이 임하는 궁궐로 되었던 것이다. 이 때를 전후하여 중화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들이 세워졌다. 그 해 10월에 왕은 천지에 고하여 황제라 일컫고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고쳤으니 경운궁은 최근세 역사상 또다른 획을 긋는 궁궐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후 일제의 압력으로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이 궁에 칩거하면서부터 궁이름을 덕수궁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