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역사·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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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재(山泉齋)
작성자 강** 작성일 2014-03-24 조회수 769
* 산천재(山泉齋)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도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이 말년을 보낸 산천재(山天齋)는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 덕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은 조선 중기 퇴계 이황 선생과 쌍벽을 이루던 도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을 야인으로 지내 후세에 그리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이 남명 선생이 61세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던 곳이 바로 이 산천재이다. 당시 남명 선생의 제자로는 임진왜란 당시 유명한 의병장이었던 곽재우를 비롯하여 오건, 정구, 김우옹, 최영경, 조종도 등이 있었다고 한다. 산천재는 사리 마을 끝부분에 있다. 20번 국도와 덕천강 사이에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도로변의 산천재로 들어가다 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남명학연구원' 건물이다. 작고 단아한 기와지붕 건물로 이름대로라면 남명 선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곳이지만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남명학연구원 앞으로 산천재가 있다. 현재는 산천재 건물과 작은 사랑채 그리고 남명선생 문집책판을 보관하는 작은 건물, 이렇게 세 채의 건물이 쓸쓸히 서 있을 뿐이다. 산천재는 1561년(명종 16년)에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방치되다가 1817년(순조 17년)에야 복원되었다고 한다. 산천재 현판 옆 세 면에는 그림이 있다. 지금은 희미해져서 정확한 그림을 볼 수 없는데, 그 그림은 각각 밭을 가는 농부와, 소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신선들, 개울에서 귀를 씻고 있는 선비의 그림이라 한다. 또 산천재 건너편 언덕 위에 남명 선생의 묘가 있다. 이 묘는 선생이 직접 자리를 잡아놓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