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晉州城) | |||||
작성자 | 임** | 작성일 | 2017-07-13 | 조회수 |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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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고려 말에 왜구방어의 보루였다. 고쳐 쌓은 진주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으로 진출하려는 왜적을 막는 관문이 되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진주대첩이 일어났던 곳으로 수적 열세에서의 승리와 이 성을 지킴으로써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었기에 중요한 요충지였다. 1593년 제2차 진주성싸움에는 민.관.군 7만 여명이 일본군 12만 여명을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순절하였고, 이 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기도 하다. 성내는 촉석루, 김시민 전성각적비, 의기사, 서장대, 북장대, 창열사, 국립진주박물관, 호국사,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 구조 진주성은 삼국시대 거열성(居列城), 고려시대 촉석성(矗石城)으로 불렀던 것이 조선시대에 진주성으로 개칭되었다. 둘레는 약 1,760m(4,359척), 높이는 약 5~8m(15척)이며, 성 안에 우물과 샘이 각각 3개 있고,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선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성문기(城門記)에 보면 성이 옛터만 남아 언제 쌓은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려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에게 석축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성의 둘레는 800보이고, 성의 높이는 세 길을 넘으며 의정문(서쪽), 지제문(북쪽), 예화문 (남쪽)이 있고, 성 밖은 서쪽으로 청천(靑川)이 남쪽에는 남강이 흘렀으며, 북쪽에는 못이 있는데 성과 못 사이에는 참호를 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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