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역사·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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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장경판전(海印寺藏經板殿)
작성자 강** 작성일 2014-03-24 조회수 884
※ 해인사장경판전(海印寺藏經板殿) 종 목 : 국보 52호 분 류 : 사찰건축 수 량 : 4동 지 정 일 : 1962. 12. 20 소 재 지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해인사 시 대 : 조선 성종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법보전(法寶殿) 이 건물은 수다라장에서 약16미터 동북쪽에 떨어져 앞의 건물과 같은 규격으로 나란히 놓여 있고 중앙칸 위에 '법보전(法寶殿)'이란 현판을 달고 그 아래 분합 살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 중앙칸은 안쪽 높은 기둥열이 있는 곳까지 벽을 쳐서 비로자나불상과 양측에 문수, 보현의 협시 보살을 봉안하여 예불을 드리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경판장에 출입하는 문은 수다라장과는 달리 분합문이 있는 칸의 좌우 양 협칸에 두 짝 판문으로 달아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건물의 규모나 가구 형식은 수다라장과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 익공 쇠서가 전면에서는 몽땅하게 부리가 잘렸고 측면에서는 쇠서부리가 남아 있었으며, 뒷면에서는 경사지게 직선으로 잘려 있어 수리할 때에 변형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 붙박이 살창도 수다라장의 것과 비슷하였지만 그 규격은 약간 차이가 있었다. ▶수다라장(修多羅藏) 수다라장은 정면 15칸 중 가운데 칸에다 출입을 위한 개구부를 만들었는데 앞면에는 상하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곡선으로 된 판재를 고정시켜 마치 종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곡선의 뚫린 문틀이 아름답다. 그 안에 들어가면 좌우 양측으로 경판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굳게 닫고 살틈으로 보면 경판을 판가(板架)에 잘 쌓아 보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물 후면의 개구부는 그냥 상하 인방과 문설주만을 짜아 둔 채 문은 달지 않고 있어 최대한의 통풍을 고려한 것 같다. 그리 높지 않은 기단 위에 대체로 네모지거나 자연석 위를 면바르게 한 초석을 두어 평면으로 보아 앞뒤에 갓기둥열과 중앙에 높은 기둥(高柱)열을 배치한 형식이다. 갓기둥은 두리기둥으로 약간의 배흘림을 두어 오래 된 시대의 형식을 보이고 있는데 높은 기둥은 네모 기둥으로 배흘림이 없다. 건물의 가구(架構)형식은 되도록 간략한 구조를 보여 보관 창고로서의 기능만을 충분히 발휘하려 한 것 같다. 곧 갓기둥 머리에는 간단한 초익공(初翼工)을 짜 대들보를 받치고 이 대들보는 중앙에 배열되어 있는 높은 기둥의 옆구리에 고정시켰다. 이와 같은 방법은 반대쪽에서도 같아 종단면으로 보아 대칭을 이룬다. 높은 기둥 좌우로 걸쳐 댄 대들보 위 가운데쯤에 각각 동자 기둥을 세워 종(宗)보를 받쳤는데 높은 기둥의 보머리가 이 종보 중앙 밑을 받치고 있어 구조는 더욱 견고함을 보인다. 높은 기둥 머리에는 주두(柱枓)와 첨차, 소로(小累)등이 간단히 짜여 장식을 이루고 동자 기둥 밑에는 복화반형의 받침재를 고정, 보강시켰으며 기둥 머리 부분에는 주두(柱枓)와 초공을 짜아 굴도리와 함께 종보머리를 받들었다.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이와 같은 형식은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대공에서도 흡사하다. 다만 여기서는 종도리를 받드는 솟을 합장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볼 수 있고 남아 있는 고려 및 조선 초기의 목조 건축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이렇게 보아 전체적인 가구 형식은 5량집 위에 짧은 서까래와 긴 처마서까래를 걸친 홑처마집의 우진각을 한 건물이다.